주후 1세기 가야는 기독교 국가였다

주후 1세기 가야는 기독교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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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1세기 가야는 

기독교 국가였다  

1. 도마의 행적

 

1) 도마는 40년간 선교의 사역을 감당하다가 순교했습니다.

   도마의 사역은 전반기 20년= 에데사 탁실라, 한국의 가야 후반기 20년= 인도의 호칭, 챙나이에서 활동했습니다.

   도마는 땅 끝이 인도인 줄 알고 왔었습니다.  이 당시 인도 역시 로마의 동쪽 끝 속국이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인도까지 왔었는데 막상 인도에 와서 보니 인도와 교역하는 더 땅 끝인 한국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가야와 인도는 교역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역사적 정황은 아래에 차차 설명드리겠습니다.)

 

 

 

 허황옥 왕비와 김수로왕

 

   2) AD 42~47년까지 한국에 6년간 머무르며 김수로왕에게 세례를 주고 인도로 돌아갔습니다.(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기록된 연대)

   3) AD 48년에 허황옥을 김수로왕에게 중매했습니다. 

도마는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 총회에 선교보고를 하러 가던 길에

인도에 들러 허황옥을 김수로왕에게 중매시켜주고는 그 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4) AD 50년 예루살렘 사도회의에 참석했습니다.(서양의 역사에 기록된 연대)

   5) AD 52년 인도 서남부 케랄라주에서 선교하였습니다.(인도의 역사에 기록된 연대)

   6) AD 72년 인도의 첸나이에서 창에 찔려 순교하였습니다.

 

2.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은 인도사람.

   1) 허황옥은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왔습니다.

  아유타국은 현재 인도에 있는 겐지스강 아이오디아라는 조그마한 읍이 있습니다.

   그 옆에 페자바드란 큰 도시가 있습니다.

   허황옥의 아버지는 약초, 향신료 등을 수출하는 아유로베다 무역상을 했던 소왕국의 왕이었습니다. 이 아유타국에서 허황옥은 48년에 한국(가야)로 시집 왔습니다.

   가락국기에 허황옥이 시집오면서 들고온 물품들을 보면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교역됐던 물품들이었습니다. 이런 물품들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에도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당시 가락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무역 교두보였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중국 현금이 발견됐습니다.(오수전, 화천, 왕망전) 중국 왕망은 신나라를 만들고 3차례 화폐개혁을 단행했습니다(AD 23년 왕망 죽음). 대천오십(AD 7~14년), 화천/화포(14~40년), 특히 화천은 20년만 통용됐습니다.

아래는 그 화천이 발굴된 장소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이 사도행전의 복음사역을 감당할 때 당시 이미 중국에서 김해와 무역했다는 것이지요. 김해는 당시 최고 해상무역 관문이었습니다. 철을 수출했지요. 1세기 당시는 육상 실크로드와 해상 실크로드가 왕성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헬라의 알렉산더가 인도까지 통일했고, 페르시아 아하수에로왕 역시 그랬죠. BC 1000년 전 이미 솔로몬 때도 에시온게벨에서 배를 만들어 해상무역을 활발히 했습니다. 그러니 바닷길도 엄연히 잘 발달돼 있음을 간과하면 안됩니다. 

경주에서 매년 열리는 실크로드 축제 팜플렛입니다.  [로만글라스 2000년전에 신라에 오다] -KBS역사스페셜-

  2) 허황옥의 후손들

   허황옥이 10왕자 2공주를 낳습니다. 그 후손이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입니다.  허황옥의 아버지로 부터 내려오는 왕손이 인도에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김종필씨가 아유타에 있는 그 후손을 찾아내서 김해에 데려와서 허황옥릉에 참배도 하고  기념식수도 해놓았으며 이런 인연으로 페자바드시와 김해시는자매결연까지 맺은 상태입니다.

 **실지로 한국어 속에는 인도어(드리비다어)가 400여개나 있습니다. 특히 농사에 관련된 유사 단어가 있습니다.

   (쌀-Sal, 벼-Bya, 가래-Kalai, 메뚜기-Metti, 풀-Pul 등) 

   3) 가락국기에서 밝히는 아유타국

   삼국유사의 내용 중에 가야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 놓은 가락국기에 보면 허황옥은 아유타에서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요디아란 말 자체가 인도 의학, 아유로베다 의학을 하는 사람이 옛날에 그 왕국을 하다보니 아유타국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인도에서 아유로베다란 의학이 의료관광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아유타국이 태국의 나라가 아니냐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뿌리를 불교로 돌리려는 노력입니다.

   아유타국이라는 나라는 전세계에 두 곳이 있습니다.

 (1) 태국의 아유타국은 15세기에 있었던 나라이지만,

 (2) 인도의 아요디아는 BC 6세기부터 있었습니다. 허황옥은 전의 인물입니다.

   -김병모박사(고려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업, 영국 옥스퍼드대 문학박사)

 4) 서울대학교 서정선교수의 DNA검사

 

 

김해 대성동 고분박물관에는 허황옥과 김수로왕의 후손들의 유물이 있습니다.

   거기에 묻힌 고분의 뼈의 DNA검사 결과 허황옥은 인도의 타미린과 같은 염색체로 밝혀졌습니다.

   이로 인해 허황옥의 한국사람, 일본사람, 중국사람 등 많은 설이 있다가 서교수의 발표로 모든 설들은 잠잠해 졌습니다.


3. 김수로왕은 누구인가?

   1)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 기마민족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는 이전까지는 알에서 나온 신화적 인물로 소개했지만 현재는 기마민족 정도로 본다고 실려있습니다.

   2) 흑해의 스키타이 민족  김수로왕은 흑해 옆에 있는 스키타이 출신 왕자입니다.

   스키타이 민족은 문자가 없으면서, 금은세공이 굉장히 발달한 민족입니다.

   신라의 금관, 귀고리 등에 보이는 '무금세공방법'이라고 하여 점이 찍히는 세공법입니다.  이 방법은 스키타이민족만 가능한 것을 나중에는 신라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참고로 농경문화는 옥을 숭상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모든 보물은 대개가 옥입니다. 실크로드를 타고 맨먼저

중국으로 들어온 보물은 바로 옥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목민들은 금을 숭상합니다. 가야가 멸망하고 신라로  흡수되었기 때문에 신라에는 백제나 고구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금문화가 있습니다.

 이 스키타이족들은 황금장식과 함께 땅을 파서 시신이 담긴 목곽(木槨)을 안치하고

그 위에 돌을 쌓아올린 소위 적석 목곽분이라는 무덤양식이 특징입니다.

   스키타이족이 흉노족과 훈족으로 불리우는 북방 유목민족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진,한 시대에는 흉노, 수. 당시대에는 돌궐(투르크=위그르=터키),  고대 그리스(폴리스 시대)에서는 스키타이, 로마(제정시대)에서는 훈(후니)족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따라서 흉노(스카티아)가 인종학적으로는 아시아족에 속하는 황인종 퉁구스계열에 속합니다.  (시베리아.만주.한반도 사람들을 지칭하는 동호=전통적인 동이족)

   신라 경주 김씨들이 비문에 자신들을 흉노족의 후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라 문무왕 비문에는 김알지는 흉노족 김일제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중국문헌의 기록의 근거는 고대 중국의 삼국지에 나오는 오나라의 왕 손권이 고구려를 ‘흉노의 왕’이라는 ‘흉노의 선우’라고 지칭한데서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유럽인들이 경주 방문하면 꼭 들르는 곳입니다.

   왼쪽에 문인은 신라사람이고 오른쪽 무인은 흉노족 입니다.

   신라 경주의 괘릉에 있는 무인석상입니다.

신라 원성왕릉(785~798,김경신) 앞에 있는 것으로 AD 700년 경에 신라에 스키타이민족과의 교역을 잘 보여줍니다.

   얼굴 모양이 중앙 아시아인 - 아시아에서 서진한 스키타이족(흉노)이 유럽인들과 피를 섞여 동진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김수로왕의 청동 솥 김수로왕의 유물중에는 김수로왕이 들고 온 청동 솥이 있습니다.  그 청동솥은 쇠꼬챙이로 꿰어서 고기도 삼고 차도 끓이는 유목민들의 것입니다.

   이것이 1990년대 초반에 김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발견으로 고고학계에서는 김수로왕은 스키타이 사람이라고 다시 굳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영향을 신라에도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란 금관총에서도 기마인물형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4) 김수로왕은 유태계 스키타이인 성경에 보면 골3:11에 나오는 '스구디아인'이 바로 스키타이인입니다. 스구디아인은 흑해 야만족인데 유대인들이 그리로 와서 유대인 스쿠디아인이 됩니다. 이들이 철기 문명을 가집니다. 

   한반도 철기문화 보급, 김해박물관에 철기 유물이 굉장히 많이 전시 돼 있습니다.

 김행에서는 해마다 이렇게 철기문화의 가야를 알리는 행사가 열립니다.

청동기로 살던 한반도에 철기문명이 들어옵니다.

   1세기 당시 아시아의 반대편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철연장을 사용하며     로마에 끌려가 콜로세움을 짓습니다. 철기는 보편화 된 것입니다.

  말을 타며 강력한 기마민족이 됩니다. 북쪽으로 거쳐 중국까지 옵니다.

   당시 실크로드는 육상과 해상이 이렇게 거미줄 처럼 연결돼 있었습니다.

   정학봉교수에 의하면 거기서 성을 쌓고 정착 하다가 너무 힘드니까 남하하게 되었고 고구려, 신라, 백제 등에도 많이 흡수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김수로왕은 가야에 온 것입니다.  김수로왕은 스키아티에서 와서 중국의 소김천씨라는 마을을 거쳐왔기 때문에 성은 김씨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김해의 구지봉에 왔을 때에 얼굴도 다르고 말도 못하니 가마 안에 있으면서 통역을 통해 얘기를 나누고 왕으로 선포되었습니다.

 

*김해 박물관에 가면 스키타이인이 왔다는 유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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